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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트컬렉션] 나, 그리고 그 밖의 것들 I, Etcetera

Marco Photo 2021. 1. 3.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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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 : 하이트컬렉션 - 나, 그리고 그 밖의 것들 I, Etcetera

 

 

나, 그리고 그 밖의 것들 I, Etcetera

2020.11.7 – 12.13

참여작가: 김겨울, 송세진, 업체eobchae, 이안리, 이유성, 입자필드

 

 

《나, 그리고 그 밖의 것들》은 2014년부터 하이트컬렉션이 연례적으로 개최해온 젊은작가전 시리즈의 2020년 버전이다. 당초 2020년 상반기 개최를 목표로 하여 준비하였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2020년이 저물어가는 11월이 되어서야 선보이게 되었다. 전시제목은 수전 손택의 단편소설집 I, ETCETERA에서 인용한 것인데, 국내에 번역서가 나와 있어서 전시의 국문제목도 번역서의 표기를 따랐다.[i]

 

이번 전시의 참여작가 김겨울, 송세진, 업체eobchae, 이안리, 이유성, 입자필드(이상 6인/팀)는 작가 김아영, 김연용, 박선민, 이우성과, 하이트컬렉션 큐레이터 나유진, 이성휘가 각각 1인/팀을 추천하여 구성되었다. 그 동안 하이트컬렉션의 젊은작가전은 주로 중견/기성작가들로부터 젊은 작가들을 추천 받아 참여작가들을 선정했는데, 2020년 전시 키워드를 ‘나’로 정하게 되면서 이번 전시만큼은 MZ세대이자 내부 구성원(큐레이터 나유진)의 참여지분을 좀더 높여보고자 하였다.

 

전시 키워드 ‘나’는 2019년 하반기 이성휘와 나유진의 사소한 대화에서 비롯되었다. 다가오는 2020년에 대해 수많은 기대와 전망이 지겨울 만큼 쏟아지던 당시, 이성휘는 사회 여러 분야의 트렌드를 잠식하고 있는 레트로가 과연 언제쯤 절정에 다다를지/사그라질지 궁금하였고, 레트로의 깃발 아래서 2020년이라는 새로운 해를 맞이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어떤 기대 혹은 체념을 하고 있는지, 미디어가 내리는 진단과 전망을 신뢰할 수 있을지 궁금하였다. 한편, 해마다 젊은작가전을 기획하는 입장에서 작가들이 새로울수록 자신은 점점 더 과거의 시간에 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2020년이라는 특별한 해에 전시에 참여하게 될 작가들과 비슷한 세대인 나유진에게 “지금 당신과 당신의 또래들이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고, 그의 답변은 바로 “나”였다. 예상치 못했던 대답이었지만, MZ세대가 X세대 이후로 사회의 기준이 아닌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고, 자기 생각이나 컨텐츠를 확산시키는데 있어서 가장 능숙하다고 일컬어지는 세대인 만큼 정곡을 찌른 답이었다고 할 수 있다.

 

hitecollection.com/ietcetera/

 

나, 그리고 그 밖의 것들 I, Etcetera

Artists · 김겨울 Winter Gyeoul Kim · 송세진 Sejin Song · 업체eobchae · 이안리 Ahnnlee Lee · 이유성 Eusung Lee · 입자필드 Particlefield Works Installation Views Publications Media Coverage 관람안내 참여작가: 김겨울, 송세

hitecollection.com

 


나,

 

참여작가들은 전시를 준비하는데 있어서 ‘나’라는 키워드 외에는 달리 전달받은 것이 없다. ‘나’에 어떤 수식어나 설명이 붙을수록 작가들의 생각을 비슷한 경계선 내로 가둘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나’라는 키워드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평이하거나 보편적으로 보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듯 참여작가들과 그들의 작업은 모두 도드라지고 저마다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밖의 것들

 

수전 손택은 조너선 콧과의 인터뷰에서, 『나, 그리고 그 밖의 것들』에서 ‘나’를 어떻게 다루었는지에 대해서 설명한 적이 있다. 손택에 의하면 그의 단편집에는 온갖 복잡한 문제와 딜레마들이 들어있고, 한두 편은 자전적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건 『나, 그리고 그 밖의 것들』일뿐, 손택은 ‘나’를 따옴표 안에 넣었다고 한다. 그는 소설로 자신을 ‘표현’한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자기 작품의 요점은 ‘나’를 표현하지 않는 것이며, 나를 ‘빌려줄’ 수 있을 뿐이라고도 했다. 무엇보다도 그가 쓰는 판타지는 ‘세계’에 대한 판타지이지 그런 일들을 하는 ‘나’에 대한 판타지가 아니라는 것이다.[ii] 이 전시가 ‘나’로 시작되었으나 ‘세계’에 대한 판타지여야 함을 손택의 말을 통해 되새김해본다.

 

[i] Susan Sontag, I, ETCETERA, New York: Straus Giraux, 1978. 수전 손택, 『나, 그리고 그 밖의 것들』, 김전유경 옮김, 서울: 도서출판 이후, 2007.

[ii]수전 손택, 조너선 , 『수전 손택의 말』, 김선형 옮김 (서울: 마음산책, 2015), pp. 164–169.

 


 

 

 

업체eobchae는 구성원들이 지닌 관심사와 기술을 활용해 창의적인 작업을 도모하는 오디오-비주얼 프로덕션 그룹으로, 2016년에 김나희, 오천석, 황휘가 결성한 그룹이다.이들의 작업은 사변적 장치, 즉 대체 가능한 미래 또는 가능세계에 대한 적극적인 사변(speculation)과 시뮬레이션을 거쳐 실재처럼 느껴질 정도로까지 밀어붙인 허구를 탄생시키고자 한다. 이것은 인종, 계급, 젠더적 마이너리티에게는 또 다른 현재와 미래를 꿈꾸게 하는 가능성의 도구이자 미학적 방법론이 될 수 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결정사 시퀀스〉(2020)와 〈결정사의 노래〉(2020)는 업체eobchae가 창안한 사변적 존재들인 결정사에 관한 작업이다. 업체eobchae는 자신들이 가능세계 A를 접촉해온다는 설정 하에 세계의 둠스데이 클락을 지연시켜 보고자 하는 야심을 지닌 지하조직인 결정사로 활동한다. 심각한 저출산 사회인 가능세계 A의 체제는 유성생식을 통한 개체 재생산을 종용하지만, 결정사들은 혼종생식을 위한 대디앱(daddy.app)을 창안한다. 또한 앱 배포, 광고 송출, 선동적 지하 집회 조직, 유통망의 포섭 같은 것들을 시도하고, 제련된 광고 텍스트, 매끈한 3D 무빙 이미지, 리추얼과 프로파간다가 혼합된 전자음악 퍼포먼스, 무료로 다운로드 가능한 AR 페이스 필터 등을 통해 소비자, 구독자를 유혹한다.

 

 

 

 

이유성은 회화를 전공했지만, 조각으로 포괄할 수 있는 오브제 형식과 물질 탐구를 진행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 이유성은 〈테스팅: 액자와 야생꽃 묶음, 무화과와 과도, 고양이 그림과 랩탑, 복, 꼬마전구 장식, 핼러윈스노볼, 바람개비, 헵워스의 ‘Figure’에 이입하는 개, 겹쳐진 세 하트, 블루베리 포도 딸기를 집게발로 잡는 꽃게의 표면을 오래 바라봄〉(2018)과 함께, 신작 〈O.O.J(Out of Joint)〉(2020), 〈터널〉(2020), 〈엘바키얀의 가루〉(2020)를 선보인다. 이 작업들은 개념적으로나 물리적인 생성 과정에 있어서 각기 다른 속도를 가진 작업들이지만 작가는 전시장 안에서 하나의 군으로 구성하였으며, 사각형 혹은 육면체의 외곽선이 갖는 한계를 소프트웨어적으로 열어젖히고자 하였다. 먼저 〈테스팅〉은 TV의 액정 전면을 양각한 목재 프레임으로 뒤덮은 작품이다. 프레임에 뚫려 있는 구멍들 사이로 디지털 이미지가 화면보호기처럼 반복해서 지나간다. 이 디지털 이미지를 화면보호기처럼 덮고 있는 것은 제목에 명기되어 있는 형상의 표면들로, 작가는 이 표면을 ‘오래 바라봄’이라고 국문 제목을 통해 지시하며, 조각적 요소와 디지털 이미지의 연결부, 그리고 그 속도감을 테스팅 한다. 신작들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대사이자 필립 K. 딕의 소설 제목으로도 사용된 표현인 ‘time out of joint’로부터 출발했다. 〈O.O.J〉는 양각한 목재 부조작업을 젖은 종이로 캐스팅한 작업이다. 이유성에게 종이라는 질료는 간단한 에너지만으로도 2, 3차원이 될 수 있고, 차원이 혼재될 수도 있는 유연하고 무른 재료이다. 작가는 이전에 자신이 새겼던 상들의 연결부를 깨트려 종이에 캐스팅했고, 결과적으로는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주름이나 구김이 만들어내는 여백에 주목한다. 〈터널〉은 반복을 통해 무한하게 이미지를 확장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가져온 ‘패턴’을 활용한 작업이다. 도일리 페이퍼로 패턴을 만들고 그 안에 작은 형상들을 변칙적으로 구성하여 관람객과의 물리적 거리를 조정한다. 〈엘바키얀의 가루〉는 출품작들 중 유일하게 조각의 수직적 속성을 드러낸다. 작품의 국문 제목은 지식 공유를 주장하며 몰래 빼낸 유료 논문을 무료로 제공해온 사이트(Sci-Hub)의 운영자 알렉산드라 엘바키얀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지식 해적질로도 불리는 엘바키얀의 행위는 ‘Shatter scatter’라는 영문 제목처럼 지식에 대한 권리를 ‘산산이 박살내서 흩뿌리는’ 행위일지 모른다. 그런데 박살내고 흩뿌리는 행위는 조각에서 질료가 변형, 변성되게 만드는 물리적 행위이기도 하다. 이유성은 다양한 재료를 일상적, 반복적으로 다루면서 조각의 매커니즘, 물성, 형태 및 구조, 동세 등에 대하여 탐구하고 있으며, 특히 재료의 물리적 속성을 여과해내지 않고 그 자체를 내러티브로 드러낼 수 있는 오브제에 몰두하고 있다.

 

 

 

 

 

송세진은 낙서처럼 알아볼 수 없게 쓰여지는 개인적인 글쓰기를, 메모처럼 이해할 수 있게끔 정리한 또다른 개인적인 글쓰기의 형태로 변환시킴으로써, 개인적 경험을 공적 영역에서 제시할 때 그 경계에서 균형을 유연하게 잡고자 하며, 특히 언어를 권력에 빗대며 언어가 가지는 힘에 대하여 주목한다. 그는 비디오, 설치, 입체, 유리, 출판 등의 작업들에서 내러티브를 시각화할 때 비선형적인 서술 방식을 택함으로써, 불온한 감정이나 경계를 발견하는 순간에 개입하거나 또 다른 내러티브를 발생시키려고 한다.비선형적인 서술의 경계에서 발생하는 이 내러티브는 영상에서는 주로 이미지와 이미지의 연결, 즉 몽타주 기법으로 인해 발생하는 힘이다. 이번 전시에 송세진은 작가의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제작한 〈Mirror Ball-Champaco〉(2013), 〈이태리 여행〉(2014) 등과 함께, 시선과 응시에 대해 다룬 신작 〈카메라와 안경〉(2020), 〈인버트〉(2020)를 선보인다. 신작들은 모두 영화나 스톡 사진의 푸티지들을 몽타주 기법으로 제작하였다. 〈카메라와 안경〉이 일렉트로닉 비트에 맞춰 푸티지들로만 연결된 작업이라면, 〈인버트〉는 작가의 ‘포기한 작업으로부터’ 출발하여 불, 뱀, 귀, 혀, 언어, 거울과 같이 작가가 선정한 모티프에 맞춰 촬영된 영상들과 영화 푸티지들을 함께 편집하였다.두 작품에는 남녀에 대한 카메라의 관습적 시선의 예로 영화 레퍼런스가 인용되었는데, 히치콕의 〈싸이코〉와 러시아 영화감독 쿨레쇼프가 실험한 바 있는 ‘쿨레쇼프 효과’다.

 

 

 

 

 

 

입자필드는 2017년에 시각디자인 전공자들이 설립한 그래픽 스튜디오로, 엄정현, 박태경, 김성령이 함께 운영하고 있다. 그래픽 소프트웨어인 애프터 이펙트의 기능 중 하나를 팀명으로 가져온 이들은 2, 3D를 기반으로 하는 모션 그래픽 애니메이션, VFX(Visual Effects), Vjing 등 다양한 형태의 작업을 진행해 왔으며, 패션, K-Pop, 기업 브랜드 등 주로 상업적인 분야에서 활동해왔다.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초점을 맞춘 작업들은 내러티브를 기본으로 하여 세련되고 임팩트 있는 비주얼로 완성되는 것이 중요했으나, 이번 전시는 입자필드 자신들의 취향에 초점을 맞출 수 있었던 만큼 현재 모바일 환경에서 쉽게 소비되고 있는 가벼운 컨텐츠들을 재료로써 탐구하여 작업하였다. 멤버들은 평소 디지털 매체의 모든 감각적인 형태와 찰나의 유머러스함을 사랑하며, 어려운 것보다는 쉬운 것을 선호하고 핫하기 보단 쿨하고 싶으나 실상 그렇게 되기 어렵다고 말해왔다. 이번 전시에 참여를 결정한 뒤로 주로 유쾌하고 웃긴 것들을 찾아보고자 하였고, 〈달라이 라마의 피드 디오라마 드라마〉(2020)는 온라인에서 시시각각 흘러 넘치는 피드들 중에서 오락프로그램의 밈, 아이돌 영상, 새티스파잉 비디오(satisfying video), 요가 클립 등을 주된 재료로 사용하여 제작한 작업이다. 단, 입자필드는 온라인 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푸티지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모델링과 텍스처링을 반복하여 매끈한 3D 이미지로 만들어냈다. 작품 제작에 앞서 멤버들은 무한도전의 고전 클립인 무야호 아저씨의 문장에서 시작해 다음 영상에서 어떤 것이 나올지 각자 한 문장씩 던지며 나름의 시나리오를 작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채 1분도 되지 않는 각각의 화면은 딱히 내러티브를 구성하지도 않기에 어느 것도 연결되는 것이라 말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달라이 라마의 피드 디오라마 드라마〉는 일상에서 너무도 빠르게 생겨났다가 풍화되어 버리는 것들의 발췌이자 재탄생이지만, 32:9 비율에 9미터가 넘는 길이의 전시장 벽면에 투사됨으로써 느리고 커다랗게 만드는 일이 되었다. 그렇기에 입자필드는 틱톡커나 유튜버처럼 모바일 스크린 상에서 재생산하는 것과 〈달라이 라마의 피드 디오라마 드라마〉처럼 전시공간용 작업으로 재생산하는 것 사이의 차이에 대해서 고민하고 궁금해하며 작업했다고 한다.

 

 

 

 

이안리는 자신의 작업이 일상적인 경험의 어떤 의미를 찾는 지점에서 시작되곤 한다고 말한다. 그는 단순하게 보이는 것들에 시선을 보내고, 귤 한 덩어리를 테이블 위에 올려 놓는 것과 같은 작은 사건에도 마음을 준다. 작가는 10년 넘게 매일의 일기처럼 드로잉을 지속해왔는데, 손에 닿는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여 그리거나 칠하고, 오려서 깁고 덧붙이기도 하는 드로잉들은 그의 솔직하고 감성적인 꼴라주이기도 하다. 연필을 반복적으로 그어 완성한 드로잉은 연필 획의 밀도에 따라 식물적, 동물적, 광물적 형태들을 동시에 보여준다. 지난 몇 년 동안 이안리는 줄곧 식물을 돌보며 식물의 작은 변화나 사건, 광경을 바라보면서 작업의 영감을 얻곤 했다. 대형 평면 작업, 작은 조각들, 매일의 드로잉 등 그의 크고 작은 작업들은 작가가 일상에서 목도하거나 사색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의 반영이자, 오브제, 설치, 퍼포먼스 등으로 끊임없이 변형되거나 이어지면서 작가의 우주를 구성한다. 이번 전시에서 이안리는 일상에서 발견한 재료들을 이용한 오브제 및 설치들과 함께, 잉크와 연필을 이용한 46점의 신작 드로잉 〈스물셋 우연의 일치〉 시리즈 1, 2부(2020)와 〈세계 가정적 필기체 사무소〉 시리즈(2020)를 주요하게 선보인다. 〈스물셋 우연의 일치〉 시리즈는 작가의 부탁으로 작가의 친구이자 시인인 임유영이 쓴 시 「도둑들」(2020)과 함께 감상할 필요가 있다. 연필을 반복해 쌓아 올린 작가의 드로잉들은 밤의 사물들 사이에서 살금살금 주워 온 반짝이는 돌들인지도 모른다. 〈세계 가정적 필기체 사무소〉 시리즈는 『1000가지 사물의 세계사(Historia del Mundo en 1000 Objetos)』, 소위 사물사전과 작가의 드로잉을 꼴라주 한 작업이다. 인류문명사의 유명한 사물들과 어우러진 그의 드로잉은 종이포대를 재활용한 거친 평면 위에서 새로운 도상학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초시간적이다.

 

 

 

 

 

 

 

 

김겨울은 손에 잡히고 뚜렷한 것들에 치우쳐 있는 이 세계를 실제로 지탱해주고 있는 것은, 불명확해 보이지만 우리가 감각을 통해서 지각하는 세계라고 생각한다. 그의 회화는 피부 바깥의 세계를 어떤 감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지, 보이는 것(시감각적인 것)뿐만 아니라 다른 감각들과 함께 어떻게 인지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즉 우리에게 던져지는 수많은 감각의 정보들을 명료함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만약 눈으로 듣는다면, 혹은 귀로 본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처럼, 감각을 전환하는 상상을 해보면서 선택적으로 어떤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거나 세심하게 감각의 움직임을 따라가 보기도 한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동안 상상 속 어렴풋한 이미지가 보여주는 것에 다가가려고 하지만 동시에 이미지 그 자체로부터는 멀어지고자 한다. 또 머릿속의 이미지를 캔버스에 옮겨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가 불러일으키는 정서나 리듬을 생각하려고 한다. 작가로서는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그림보다 계획에서 자꾸 이탈하고 설명할 수 없는 곳으로 빠져들어가는 그림이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는 자극이 된다.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김겨울의 작품은 그의 작업실 문을 꽉 채울만한 크기의 〈동면하는 이마〉 (2020)부터 전시장 천장 모서리에 웅크린 듯 걸린 작은 캔버스 그림들까지 다양한 크기의 회화들로 구성되었다. 이 가운데 〈To Whom It May Concern〉(2020)은, 읽으면 사라져 버릴 것처럼 수취인이 불명확한 한 장의 가벼운 편지같이, 서로 모르는 사이에서 쓰여진 편지의 불확실한 전달 여부와 동시에 어떤 기대감의 무게를 담아냈다.

 

 

 

 

 

 

 

by Mar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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